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 또는 작품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맛있다. 멋지다. 대단하다. 뛰어나다.
위의 표현들은 어떤 기준을 전제로 하는 표현이며 기준이 바뀌면 평가는 아래와 같이 달라질 수 있다.
맛없다. 볼품없다. 그저 그렇다. 형편없다.
평가의 대상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어도 이를 바라보는 주체의 관점이 달라지면 평가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지켜보노라면 대부분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최상병 사건 관련하여 국회 청문회에서 유상범 국회의원은 "삼부"가 골프에서 사용하는 3부 타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임성근 전 사단장에게 질문하여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임성근 전 사단장은 군 골프장에는 "3부"가 없다고 분명히 대답했다. 유상범 의원은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 것임이 드러나버렸다.
유상범이란 사람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다른 일반인이나 민주당 의원들도 유상범과 같은 처지에 놓이면 같은 짓을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감자 수확량조사를 약 8일 동안 하였다. 수확량 조사를 할 때 표본구간에서 감자를 캔 후에 무게를 달아야 예상수확량을 가늠할 수 있다. 어떤 계약자는 조사자인 우리더러 표본으로 캔 감자를 가져가도 좋다는 말을 한다. 그런가 하면 무려 18 농지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어떤 계약자는 감자의 알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크지 않다며 연신 투덜대고 썪어있는 감자가 있을 법한 곳으로 안내하여 피해율을 높이려 하면서 단 한 개의 감자도 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기에 조사자인 우리들에게 감자 한 개를 건네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도로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는 끼어들기 또는 추월로 인하여 다투거나 폭력이 발생한다. 최근에도 경기 고양시 서울문산고속도로에서 50대 운전자가 무리해서 끼어들기를 하려던 다른 운전자를 막아서고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운전자가 무리하여 끼어들기를 할 때 양보해주면 간단한데 왜 양보하지 않고 막아서며 폭행을 하는 것인가?
가해자는 당시의 상황에선 끼어들기를 하면 안된다는 자신의 기준에 집착한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하면 자존심이 발동하여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것이다. 부부싸움에서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원리도 동일하다.
즉 이 사건에서 작용하는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주관(기준)과 자존심인 것이다.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그런 갈등은 발생하지 않으며 설령 갈등이 시작되었을지라도 자존심을 내려 놓으면 갈등은 봉합된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잣말로 상대방을 욕하는 것으로 마음을 풀고 몇 마디 투덜거리며 넘어간다. 자존심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나중에 가서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다툼이 있을 때 다투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이기려 애쓰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다투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농작물조사를 위해 계약자들을 만나러 갈 때 나의 주관을 완화시키고 자존심은 아예 차 안에 두고 내린다. 나의 논리로 계약자를 설득하려 애쓰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주장을 내려놓고 반대로 계약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의 태도를 바꾼다. 그렇게 하여 나에 대하여 계약자가 부정적인 시선이 아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계약자의 말에 공감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도우려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웃으며 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평소 알고 지내는 이들과 농부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나는 농부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조사에 임할 때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들을 대하여 갈등없이 조사에 임하는 것이 최우선 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에 대하여 논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이들을 대할 때는 농부들을 대하듯 처신할 수는 없다.
농부와의 관계에서는 농부에게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며 농부의 생각에 공감하고 적절한 선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인과의 관계에선 상호적 공감이 중요하다. 상호적 공감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대감이 옅어질 수밖에 없다. 상호적 공감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지만 그건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성적 측면이 어느 정도 합치해야 하고 이성적인 측면은 토론을 통해서 서로에게 다가서야 한다.
감성적 측면은 타고나는 것이기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대화를 통하여 최적 지점까지 수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감성적, 이성적으로 타인과 일체감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자신만의 감성과 자존심에 휘둘리며 타인과 이성적인 합의점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찾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이상적인 친구는 무엇보다 감성이 맞아야 한다. 영화, 소설, 풍경, 음식, 여행, 술자리 등등에 대한 감성적 공감이 넓을수록 좋으며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서 상대방이 반대의견을 제시할 때 긍정적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수용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상대방을 경쟁자로 보지 않을 만큼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우리 인간은 자신만의 기준(주관)과 자존심을 가지고 세상을 대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간관계는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