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를 판단함에 있어 먼저 자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다음과 같이 자유를 정의하고 있다.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가령 누군가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먹을 음식을 선택했을 때 본인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혹시 거기에 구속이나 얽매는 것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음식을 선택할 때는 본인의 미각적 선호로 결정하겠지만 금전적 상황이나 건강에 대한 염려 등을 고려하여 결정을 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강제로 선택을 강요하진 않기에 자유의지로 선택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금전, 미각, 건강과 관련된 제약조건이 그 사람의 선택을 제한하여 몇 가지 메뉴 가운데 선택하게 되고, 금전이나 건강 문제가 없어도 미각적 취향에 따라 선택하게 되는데, 예컨대 마지막에 두 가지 음식 중 하나로 결정할 때도 최소한 미각적 선호 등의 기준으로 선택하게 되고 그런 조건을 통한 필터링을 거쳤을 때조차 결정하기 어려우면 아무 거나 선택하게 된다. 결국 내부의 뭔가가 그런 결정을 구속하는 것이다.
만약 아무거나 선택하는 것을 자유라고 볼 것인가?
그건 엄밀히 보자면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자유의지도 아니며 두 가지 중 주는대로 먹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따라서 자유의지란 없는 것이다.
휴게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언제 출발할지 결정하는 것도 자신이 처한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대개 순간적으로 자신이 처한 조건을 따져서 결정하기 때문에 처한 조건이 결정하는 것이며 만약 아무 때나 출발한다면 출발 시점에 대한 자유의지가 개입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 여부를 구분할 때 자신의 내적 조건이냐 외부적 조건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은 조건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지 순수한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다.
다만 외부적 조건에 의한 구속이 아닌 내부적 제한 조건이기에 자유의지라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결론적으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에 모든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영향을 받아 수동적으로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의 행위도 자유의지라기보다는 내가 처한 환경이 나의 뇌에 자극을 주어 이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즉 자유의지란 있을 수 없다.
산꼭대기에 빗방울들이 떨어지면 습도, 바람, 기온, 지형 등등의 조건에 의해 이 빗방울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다만 우리는 그 물방울이 언제 어느 하천으로 흘러들어가고 그런 물방울이 모여 어느 지역의 어느 집을 휩쓸어버릴지 모를 뿐이지 모든 것은 이미 백뱅의 순간에 다 예정되어 있는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물리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인 변화까지도 그렇게 진행되기에 인류의 뇌작용도 마찬가지로 그 중의 일부이기에 빅뱅 순간에 인간의 온갖 감정 즉 분노, 시기, 자만, 성욕, 호기심 등이 어떤 식으로 직용할지 결정되어 있기에 예컨대 먼 미래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지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가 열심히 연구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 여행을 하고 노화를 멈추게 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그것 역시도 이미 백뱅 순간에 자연의 섭리에 의해 예정된 과정일 뿐이다.
우리 몸속의 피는 자유의지로 혈관 속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며 밥을 먹으면 위장은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음식을 소화시켜 소장으로 내려보낸다.
즉 몸 안의 피는 자유의지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의해 정해진 원리대로 활동하듯 인류 역시 그런 원리 속에서 우주의 구성분자로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녹화된 방송을 보는 것보다 생방송을 볼 때 생동감을 더욱 느끼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변화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현재 시점에서 볼 때 그럴 뿐이지 우주적 시점에서 보면 현재 진행되는 것도 이미 녹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살인, 강간, 선행도 예정된 것이며 그에 따른 처벌도 예정된 것이고 이 글을 읽고 말도 안되는 괴변이라고 판단하거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예정된 것이다. 즉 우리들이 하는 행동이나 생각 모두가 우리가 처한 조건에 따른 반작용일 뿐으로 물리적, 화학적 법칙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다. 내년에 한반도에 다가올 태풍은 예정되어 있지만 어느 경로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올지 우리는 아직 모를 뿐이다. 태풍이 오지 않도록 기도를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기도 후에 태풍이 오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 덕분이 아니라 태풍이 안오게 되어있고 기도를 하게 되어있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도자의 영험한 능력에 탄복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손흥민이 한국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맨인데 그는 그런 자질을 타고 나도록 예정된 것뿐이다. 김연아가 세계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된 것은 타고난 자질뿐만 아니라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겠지만 그렇게 하도록 이미 정해진 우주적 설계에 따라 행동한 것뿐이다. 달리 말하면 손흥민이나 김연아는 운이 좋은 것이다. 흔히 운은 우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주적 관점에서 우연과 필연은 같은 것이다. 우연이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임을 보지 못하기에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아무튼 현재의 시점에서는 - 비록 예정된 것임에도 - 자유의지로 뭔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다만 지나간 일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판단하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든 호의를 베풀든 그건 이미 그렇게 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호의를 베푸는 이에게 감사하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기에 아무 문제가 없지만 피해를 준 이에게 분노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피해를 입힌 자는 주어진 운명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약에 중독된 이가 자율적으로 마약을 끊기는 불가능하듯 호모나 강간범도 호르몬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며 머리가 나쁘고 게을러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기에 질책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질타보다는 이들의 운명을 위로하고 치료하여 도움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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