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언론에선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부상자에겐 별로 관심이 없다.
사실 죽은 이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해서 죽은 이가 살아돌아올 리도 없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어떤 의미에선 죽은 이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죽은 이는 삶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생물의 상태이기에 피해를 입었다고 불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바위를 부숴버린다고 해서 그 바위가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피해란 그 대상이 피해를 입었음을 인지할 때 피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부상당한 이들, 그 중에서도 불구자가 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피해자인 것이다.
그들은 평생 동안 그 피해를 잊지 못하고 고통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죽은 이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죽고싶지 않기 때문에 죽은 자에 대해서만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접근해볼 때 죽은 이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이가 왜 불쌍하단 말인가?
그런 발상은 죽고싶지 않다는 본능이 만들어낸 환상인 것이다.
귀한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린 자가 다이아몬드를 그리워하듯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가족의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따라서 가족이 죽으면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은
죽은 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양원에서 힘겹게 연명하는 노인들은 불쌍하지만
돌아가신 순간 더 이상 불쌍한 분이 아니다.
더 이상 생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고통을 안느껴도 되니 죽음은 오히려 축복할 일이다.
이태원 참사에서 부상당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욕망 (2) | 2023.12.20 |
|---|---|
| 세상을 대하는 법 (0) | 2022.11.16 |
|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존재하는 것일까? (0) | 2022.11.09 |
|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 (0) | 2021.02.28 |
|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왜 마음이 쓸쓸해지는가? (0) | 2021.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