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속도로 흘러가버린 60여 년을 살면서 본의아니게 삶과 죽음에 대하여 사유하게 되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훨씬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나의 중요한 특징은 자의식이 강하여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을 늘 들여다 본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생각에 거의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자만스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유명 정치인들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유치함이나 치졸함이 너무나도 잘 보인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법륜 스님의 설법 속에서도 모순이 많으며 스님의 한계성이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가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생각이 일 정도로 삶의 진리를 깨우친 경지에 이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제 <I am love>란 이탈리아 영화를 보았다.
재벌의 아내가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위해 집을 나가버리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는 곧바로 두 사람의 관계의 결말이 좋지 않을 것이라 예감한다.
영화에선 주인공 여자의 딸은 레즈비언임을 엄마에게 몰래 말하고 엄마는 아들 같은 남자에게 빠져 집을 떠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면서 마치 나이를 초월한 남녀의 사랑이 위대하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젊은이가 자신의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부도덕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젊은 남자가 자기 또래가 아닌 그렇게 나이 많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은 그 때의 주변환경이 만들어준 일시적인 환상에 의해 지배되어 저지르는 것일 뿐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고 정신을 차리면 두 사람의 사랑은 식어버리게 마련이다. 왜냐면 시간이 지나면 축처진 그 여자의 몸매가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여자는 젊은 그 남자가 초라하게 보이게 되고 자신이 놔두고 와버린 엄청난 돈이 생갈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남녀는 사랑에 빠지면 결혼하고 싶어 한다. 왜냐면 언젠든지 원하면 상대를 껴안고 싶기 때문이다. 즉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견딜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아무리 깊게 사랑하는 커플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정으로 변하게 된다.
사랑이란 적극적으로 상대를 원하는 감정이다. 반면 정은 상대를 원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불행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배려의 소극적인 감정이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성욕이 지배할 때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 강렬함이 사라질 때 사랑이 아니라 정으로 산다고 한다. 문제는 그 강렬한 성욕은 어느 정도 상대에게 익숙해지면 누그러진다는 것이다.
위에선 성욕에 대해 얘기했지만 인간은 명예욕, 소유욕, 자존감, 우월감에 매우 집착한다.
그런 욕망은 그들이 역동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대부분의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국회의원들은 오로지 다음 선거에도 당선되고 싶고 자신을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팬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고 오랜 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남보다 더 잘난 사람임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나있다.
각종 매스컴 등을 통해 보는 사람들의 태도 속에서 그런 면이 너무나 잘 드러나 보인다.
내 눈에 사람들은 참으로 유치하다.
하지만 그런 면을 통찰하는 내가 타인에게 나의 그런 예리한 판단력을 과시하려 하는 것도 또한 유치한 것이다.
짧지 않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정신적으로 나름의 경지에 오르려 노력해왔고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런 나를 알아봐 주기를 기대했던 나의 내면이 이제야 잘 보인다. 이제야 등잔 밑이 보이는 셈이다.
나의 주관을 타인에게 강하게 어필하려는 욕구를 벗어던져야 한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풀을 뜯는 톰슨가젤을 덮치려는 사자를 방해하거나 매복한 사자가 신중하게 톰슨가젤에게 다가갈 때 톰슨가젤이 도망가도록 도와주는 행위는 자연의 섭리를 깨뜨리는 것이듯,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온갖 행태에 대하여 관여하지 말고 그냥 관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제부터 내가 취해야 할 삶의 태도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제부턴 입은 가능하면 음식을 섭취하는 통로로만 사용하고 타인과의 소통 시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줄 뿐 가르치려는 태도는 자제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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